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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빛가람타임스

염제신 초상화

  • 입력 2015.01.03 10:40
  • 수정 2015.01.0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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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恭愍王 親圖) 고려 공민왕 친도
  ◇ 문화재 분류 :  대한민국 국가 보물
  ◇ 문화재 번호 :  보물 제1097호
  ◇ 문화재 명칭 : 염제신초상
  ◇ 문화재 지정 : 1991년 9월 30일
  ◇ 문화재 보관 : 국립중앙박물관

고려말(高麗末)  명재상(名宰相)인 염제신(廉悌臣)(1304∼1382)의 초상화로 가로 42.1㎝, 세로 53.7㎝이다. 염제신(廉悌臣)은 어릴적부터 원나라에서 살아 원나라 황제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돌아와 여러 왕들의 신임을 받으며 문하시중(門下侍中)까지 올랐다.

고려말(高麗末)의 명재상(名宰相)인 염제신(廉悌臣)(생몰년(生歿年) 미상(未詳))의 초상화로 원래 족자(簇子)였던 것이 현재 액자(額字)로 재표구되어 있다. 화면(畵面)의 4변(四邊)이 원래의 것인지 잘리워진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림 주요부분이 화면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어 큰 손상은 없는 듯하다. 이 작품은 현존 예가 극히 드문 고려말의 초상화로 안향상(安珦像)이나 이제현상(李齊賢像)에서와 같은 우안묘사(右顔描寫), 평정건(平頂巾)의 착용등이 주목되며 단령(團領)깃의 당초문(唐草文)은 처음 보이는 것으로 매우 특이한데 필치가 섬세하고 작품의 품격이 뛰어나 고려시대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지극히 희귀한 작품이다. 염제신(廉悌臣)은 본관(本貫)은 곡성(曲城), 자(字)는 개숙(愷叔), 소자(小字)는 불노(佛奴)이며 고려의 충혜왕, 충목왕, 충정왕, 공민왕, 우왕 등 5왕을 섬긴 중신(重臣)으로 충성수의동덕론도보리공신벽상삼한삼중대광곡성부원군(忠誠守義同德論道輔理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曲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諡號)는 충경공(忠敬公)이다. 작자(作者)는 미상(未詳)이나 목은문고(牧隱文藁) 권(卷)15의 염제신(廉悌臣) 비명(碑銘)에 보이는 “(공민왕이) 친히 얼굴을 그려 하사했다(친도형사지(親圖形賜之)) ” “현릉께서 친히 초상화를 그려주니 위대한 공덕이 단청에 빛나도다(현릉친도기형풍공성덕환호단청(玄陵親圖其形豊功盛德煥乎丹靑)) ”라는 기사로 미루어 공민왕이 그린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소장자에 의하면 원래 염제신(廉悌臣)의 원찰(願刹)에서 모시고 있다가 그의 9세손(世孫)이 나주(羅州)의 금강서원에 옮겨 봉안하였다 하며 그후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종가에서 소장 해왔다고 한다. 안면(顔面)은 우안칠분면(右安七分面)으로 윤곽선은 옅은 회색으로 정의하였고 법령(法領)의 주름 아래를 비롯 여러곳에 옅은 선염을 베풀었다. 눈썹, 모발, 수염은 모두 흑과 백의 가는 선을 교차시켜 묘사하였고 눈시울에 붉은 선염을 가하였으며 눈동자는 ⊙와 같이 표현한 후에 위 눈꺼풀에만 한 줄의 가는 먹선을 그었다. 눈꺼풀 상하에 속눈썹을 일일이 그렸다. 의습선(衣褶線)은 꺾임이 적은 철선묘(鐵線描)로 단순하게 묘사되었으며 녹포(綠袍)에는 아무런 문양이 없다. 녹포(綠袍)에 많은 박락이 생겼으나 후에 보수하였고 단령(團領)의 안쪽은 연보라색 바탕에 보라색 선묘(線描)로 당초문(唐草文)을 자유롭게 시문(施文)하였다. 깁은 안료가 칠하여지지 않은 바탕면의 손상이 가장 커서 좌상(左上)에 6 ×10㎝, 우상(右上)에 6 ×3㎝를 비롯 우변 전체와 좌변 중간, 하변등에 크고 작은 박락이 무수히 보이며 가로 세로로 접혀 꺾이면서 생긴 좁고 긴 탈락도 많다. 얼굴의 상태가 가장 양호하여 두 눈을 잇는 선과 콧방울, 턱 등에 가로 접힌 금이 3∼5곳 있을 뿐이며 평정건(平頂巾)의 상부에 작은 보수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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